내수 부양, '등(等)'에 달렸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4.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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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카스테라]

또 '등'(等)이 말썽이다. '아무개 등' 할 때 '등' 말이다.

써놓고 나면 늘 문제가 생기지만 없으면 아쉬운 게 '등'이다. 법조문일 때는 더하다. 좁게는 한없이 좁게, 넓게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갈 정도로 넓게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엔 추가경정 예산을 짜는 문제가 걸렸다. 국가재정법이 정한 추경예산 편성 요건에서 '등'이 빠진 게 화근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추경예산을 짤 수 있는 경우를 3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첫째 전쟁 또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다. 둘째는 경기침체 또는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셋째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생기거나 늘어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첫번째 요건에 '등'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전쟁이나 태풍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난 경우에만 적용된다.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에는 이 요건을 적용할 수 없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법을 만들 때 자연재해 '등'에서 '등'을 빠뜨렸다"고 했다.



두번째 요건에는 '등'이 있지만 '중대한 변화'라는 문구가 걸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내수가 너무 위축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내수위축'을 '중대한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현행 법 아래에서는 내수진작용 추경예산을 짜기 힘들다는 게 전부의 판단이다. 결국 내수진작용 추경예산을 짜려면 '등'자 하나를 넣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하는 셈이다.

법조문의 '등'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도 '등'에서 비롯됐다. 은행법 시행령에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땐 론스타와 같은 펀드도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게 화근이었다.

참여정부 말기 국회의 공전을 불러온 '사학법 개정' 논란의 중심에도 '등'이 있었다. 사립학교법상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기관인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 뒤에 '등'자를 붙이자는 게 당시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등'을 붙이면 이사 추천자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문제가 되는 '자구'가 있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회에서는 쉼표(,) 하나를 놓고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고받고 싸운다. 관계대명사 'which' 앞에 쉼표를 찍느냐 마느냐에 따라 의미가 바뀌기 때문이다.

쉼표를 찍으면 앞 구문 전체를 받아 문장이 이어지지만 쉼표가 없으면 오로지 바로 앞 명사만 한정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선 엄청난 해석의 차이를 낳는다. 쉼표에 비하면 '등'은 그나마 낫다고 봐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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