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나면 늘 문제가 생기지만 없으면 아쉬운 게 '등'이다. 법조문일 때는 더하다. 좁게는 한없이 좁게, 넓게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갈 정도로 넓게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엔 추가경정 예산을 짜는 문제가 걸렸다. 국가재정법이 정한 추경예산 편성 요건에서 '등'이 빠진 게 화근이다.
문제는 첫번째 요건에 '등'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전쟁이나 태풍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난 경우에만 적용된다.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에는 이 요건을 적용할 수 없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법을 만들 때 자연재해 '등'에서 '등'을 빠뜨렸다"고 했다.
법조문의 '등'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도 '등'에서 비롯됐다. 은행법 시행령에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땐 론스타와 같은 펀드도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게 화근이었다.
참여정부 말기 국회의 공전을 불러온 '사학법 개정' 논란의 중심에도 '등'이 있었다. 사립학교법상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기관인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 뒤에 '등'자를 붙이자는 게 당시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등'을 붙이면 이사 추천자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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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적으로 문제가 되는 '자구'가 있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회에서는 쉼표(,) 하나를 놓고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고받고 싸운다. 관계대명사 'which' 앞에 쉼표를 찍느냐 마느냐에 따라 의미가 바뀌기 때문이다.
쉼표를 찍으면 앞 구문 전체를 받아 문장이 이어지지만 쉼표가 없으면 오로지 바로 앞 명사만 한정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선 엄청난 해석의 차이를 낳는다. 쉼표에 비하면 '등'은 그나마 낫다고 봐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