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버블시대의 머니 게임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2008.03.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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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칼럼]

단순한 경기 침체인가? 아니면 거품 붕괴로 인한 복합 불황인가? 현재의 시장 상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현재의 시장 혼란과 불안정이 주기적인 것이라면 그저 얼마간을 견디면 된다. 그러나 만일 포스트버블(post-bubble)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임의 룰이 전반적으로 바뀌게 된다.

불행하게도 상황은 후자로 굳어지고 있다. 그것도 2000년대 초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다. 당시는 전 세계가 인터넷기업 거품 붕괴의 몸살을 앓았다. 그래도 그때는 미국이든 우리든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돼 경제에 타격을 입은 정도다. 지금은 1990년대의 일본과 더 닮아가고 있다. 미국이든 우리든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자산 가격의 붕괴와 소비 위축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졌다. 불황이 보다 복잡하고 장기화 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돈에 관한 게임의 룰은 어떻게 바뀔까? 다시 1990년대의 일본으로 돌아가 보자. 무엇보다도 당시는 재테크 신화가 무너졌다. 1989년 정점에 달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90년대 후반 접어들어 최고 4분의 1로 폭락했다. 재테크에 몰두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몰락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 급등에 편승하는 식의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빚을 얻어 투자한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이들은 자산 가격 폭락에 더해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중의 타격을 입었다.

원래 재테크라는 것이 1980년대 일본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폭등했다. 일본 경제는 언제나 좋아진다는 신화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자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 치솟기 시작했다. 자신의 돈으로 혹은 돈을 빌려 자산을 사두기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부자가 됐다. 재테크(財 +Tech)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사실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정도는 덜했지만 2000년 초반 이후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국 경제는 긴 호황의 숲에 들어선 듯했다. 부동산이든 주식시장이든 늘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미국식의 재테크가 만연했다. 형편이 부대껴도 돈 빌려 집을 사고 주식 투자를 했다.

그런데 2004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미국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최근 주가까지 폭락 기미를 보이자 정부와 중앙은행마저 시장을 관리하기 버거워 하고 있다. 금리 인하라는 주기적 경기 침체 대응 방안만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버블시대 최고의 재테크는 무엇일까? 바로 무리해서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불안정한 자산 가격으로 무임승차식 재테크가 불가능해져서다. 자칫 방심하는 순간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날릴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재산 보호(asset protection)에 주력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떼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원금이라도 까먹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


크게 재산을 못 불린다 하더라도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전통적인 재산 보호 전략이라면 현금이나 예·적금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지금과 같이 물가가 뛰는 상황에서는 이 일로 자칫 실질적으로 원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축에 더해 실물자산과 관련된 투자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금을 사둘 수도 있겠지만 실물자산 관련 펀드에 가입하는 것도 괜찮다. 어찌 됐든 이제 재테크시대의 열기를 잊고 흥분을 가라앉힐 일이다. 포스트버블시대의 머니 게임은 이전보다는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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