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출신 삼성맨이 프레시안에게...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08.03.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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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이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수출 운임을 과다지급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를 보도한 후 이달초 삼성전자가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으로 현재 삼성전자 (64,200원 ▼500 -0.77%)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효상 차장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은 서한 전문.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님께 드리는 글



안녕하세요? 삼성전자 홍보팀 박효상 차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5년 5월 삼성전자에 입사하기 전까지 전문지와 대표적인 진보 종합 일간지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물리적 시간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삼성맨'보다 기자로서의 문화가 더 익숙하기도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삼성전자와 프레시안간 소송 건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군가와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피를 말리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팩트'가 생명인 언론이 이번 소송의 근본 원인인 '삼성전자, 수출운임 과다 지급 의혹'(프레시안 2007년 11월 26일자) 보도 내용의 사실관계 검증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수신문은 이미 접수가 끝났고, 나머지 신문은 광고로 다스리면 되고. 방송사는 이명박 정부가 알아서 입단속을 해줄테고. 아, 골치 아픈 인터넷 언론 한 두 개가 남았구나. 이참에 <프레시안>을 흔들면 다들 알아서 기겠지. 그래 일단 10억원으로 괴롭히자."(프레시안 3월 4일자, "삼성은 한국 사회의 암 덩어리" 시리즈의 '편집자 주' 중)



삼성전자가 프레시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프레시안의 '편집인'은 그렇게 보셨더군요.

삼성전자가 소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프레시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특검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의 처지를 이용해 논점을 '나쁜 재벌 기업'과 '핍박 받는 진보 언론'의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닌가요?

제가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프레시안의 특종인가?

프레시안이 최초 보도한 '삼성전자, 수출운임 과다 지급 의혹' 기사의 뼈대는 제보자인 박중석 씨가 2006년부터 여러 언론사에 무차별적으로 제보했던 내용과 동일합니다. 실제 종합지와 경제지, 일부 인터넷 매체의 경제부와 산업부 출입 기자들 중 상당수는 이미 이러한 제보 내용을 접했습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MBC', 'SBS' 등 대부분의 언론사가 박중석 씨로부터 직접 제보를 받은 후, 또는 프레시안의 보도 이후 취재나 사실 확인에 나섰습니다.



특히 일부 언론사의 경우 기획취재부나 탐사보도팀을 가동해 삼성전자 뿐 아니라 관세청과 관세사 등 오랜 시간 동안 심층적으로 취재했습니다. 심지어 많게는 한 달 이상 취재를 한 언론사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언론사는 왜 하나같이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삼성은 물론 관세청과 관세사까지 취재해 보니 박중석 씨의 제보 내용이 사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설명을 듣고 관세청이나 관세사를 취재하든지, 또는 다른 기업들의 경우 어떤지 한 번 만이라도 제대로 취재했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던 기사였습니다.



다시 말해, 프레시안이 '단독'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특종'이 아니라 '사실과 다른 보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삼성과 프레시안간 소송 건이 알려진 뒤 모든 언론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또렷해 집니다. 삼성 특검이 진행중인 현 상황에서 당초 프레시안이 제기했던 의혹이 사실이라면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후속 보도를 쏟아 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타 언론은 물론, 정작 프레시안 조차 단 한 줄의 후속보도도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왜인가요? 프레시안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초 기사가 사실이 아닌데, 후속기사를 어떻게 쓸 수 있겠습니까?



다른 언론은 사실 확인을 거쳐 아무도 쓰지 않은 것을 왜 프레시안만 썼을까요? 이유야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합니다. 프레시안의 단독 기사가 '특종'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보도'라는 사실 말입니다.

취재의 기본도 상실

기자는 속성상 특종을 추구합니다. 특종의 꿈이 없다면 기자도 아니지요. 그래서 때론 무리한 기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레시안의 최초 보도는 취재의 기본도 안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갑니다. 마치 오보를 향해 질주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삼성전자가 수출운임 과다 지급을 통해 1조3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어마어마한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성 기자님은 삼성전자에 무엇을 취재하셨습니까?

기사가 게재되기 며칠 전인 2007년 11월 22일 오후 4시 20분경, 삼성전자 홍보팀 간부에게 처음 전화를 해 다짜고짜 "삼성전자로지텍 단가가 kg당 10달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6~7달러라던데, 다른 곳보다 비싼 이유가 뭔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매체 기자들은 무엇을 취재하는지 설명을 하고 확인을 요청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 영업비밀을 물어 보면서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으니 해당 간부는 원론적으로 대답할 수 밖에요.

딱 한 번의 전화. 그것이 성 기자님이 당사자인 삼성전자에 확인한 유일한 취재였습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삼성전자로지텍에게는 어떠한 취재 요청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성 기자님은 관세청이나 관세사 등 전문가들에게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수출 내역을 신고하지만, 이 또한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성 기자님은 제보자의 말만 철두철미하게 믿었습니다. 적어도 기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것입니다. 실로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성 기자님은 "최근 입수한 관세청 자료에 대한 분석을 수출입 가격 분석 전문가인 박중석 ITMI 대표에게 의뢰했다"라고 기사에 썼습니다. 제보자인 박중석 씨에게 자료를 받아, 제보자에게 자료의 분석을 맡겨 놓고 마치 제보자와 분석자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언론사에는 많은 제보가 쏟아 집니다. 수많은 제보 가운데 기자가 하는 최초의 일이 제보의 신뢰성 검토이고, 그를 위해 제보자가 어떤 목적으로 제보했는지를 가장 먼저 취재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성 기자님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의 대표께서는 이번 소송과 관련, "저희로서는 사실 살 떨리죠. 이런 소송을 통해서 말하자면, 조그만한 의혹도 제기하지 말라 이런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데..."(3월 7일 MBC '오늘 아침' 방송)라고 하신 걸 보면 말입니다.

한국 최대 글로벌 기업이 한 분기에 물류로만 1조3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엄청난 사건을 보도하면서 책임 있는 언론사 대표가 "조그마한 의혹"이라고 표현하는 의식 수준이라면, 언론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은 앞이 깜깜하고 막막합니다.

"사실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가 기본적인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던 근본 원인 아니겠습니까?



온라인 대안언론의 모습?

2007년 11월 26일 의혹을 제기한 최초의 보도 이후 보여준 성 기자님과 프레시안의 태도는 정도 언론으로서 보여야 할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계신지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한 번 복기해 볼까요?

2007년 11월 26일 프레시안의 최초 보도가 나온 후 그 날 오후 7시 30분경 삼성전자 임직원이 프레시안을 방문, 충분히 내용을 설명하며 문제 내용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성 기자님은 "편집국장과 연락 후 조치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한 후 밤 11시50분이 되어서야 기사 끝 부분에 "한편 삼성전자는 삼성전자로지텍에 실제로 지급한 운임은 관세청 기록과 다를 수 있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다 써 놓고 마지막에 삼성전자의 해명성 발언을 곁들인, 지극히 도식주의적 기사의 전형인 셈입니다.

다음날 오후 2시경 성 기자님이 삼성전자를 방문, 4시간여 동안 실제 지불한 세금계산서 등 성 기자님이 요청한 자료 등을 확인한 후 밤 11시 30분경 현재 사이트에 나와 있는 형태로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은 그대로이고, 삼성전자가 문제를 제기했던 핵심 부분(운임의 kg당 단가를 10달러로 임의 책정한 오류와 박중석 씨의 비자금 관련 의혹 제기 부분)은 그대로 둔 채 삼성전자의 해명만을 좀 길게 반영했을 뿐입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성 기자님에게 추가 수정을 요청했지만 수용을 안해 11월 28일 프레시안에 정정보도 요청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그래도 프레시안은 삼성전자의 추가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12월 12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중재를 신청했습니다. 12월 21일, 중재위의 조정중재 불성립 결정이 나 부득이 2008년 2월 20일 소송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언론사에 대한 정정보도요청과 언론중재위원회, 소송은 모두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기 위한 유일한 절차입니다.



사실이 아닌 내용 하나를 수정하는 데 이 정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피해자란 말입니까?

그럼에도 프레시안은 "프레시안에 대해 자신들이 제시한 정정보도문을 초기화면 중앙 상단에 1개월 동안 게재할 것, 이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500만 원을 삼성전자에 지급할 것, 이와는 별도로 10억 원의 손해배상금 및 소장 송부 다음 날부터 지급일까지 연 20%의 이자를 지급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정정보도문을 한달 동안 게재하라는 요구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10억 원의 손해배상금 요구는 인터넷신문의 영세한 규모를 감안하면 사실상 폐간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며, 삼성전자를 독립언론을 탄압하는 존재로 몰아 붙이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프레시안에 보냈던 정정보도 요청 공문과 언론중재위원회에 냈던 조정중재신청서를 볼까요?

먼저, 삼성전자가 프레시안에 보낸 정정보도 요청 공문을 보면, "기사 중, 사실과 다른 운임 부분을 수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삼성전자가 삼성전자로지텍에 지불한 운임의 kg당 단가를 10달러로 임의 규정한 오류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귀사는 또 ITMI 박중석 대표의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부당 내부거래를 하고 있는 셈", "삼성전자가 탈세를 위해 비용을 부풀리려 한 것", "비자금으로 쓰일 가능성" 등의 관련 내용을 보도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통계자료 해석의 오류이며 억측에 불과하므로, 이 부분도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가 삼성전자 요구사항의 전부입니다.



중재위원회에 낸 신청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의 요구사항은 "프레시안의 초기 화면 중앙 상단에 '수출운임 과다지급 의혹관련 정정보도문' 이라는 제목을 1일 동안 게재하되, 제목을 클릭하면 정정보도문이 표시되게 하고, 이후에는 조정대상 기사의 하단에 정정보도문을 이어서 개재할 것"과 "주요 포털 사이트에도 정정보도문이 게재되도록 한다"가 전부입니다.

프레시안의 말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정정보도문 1달 게재)와 사실상 폐간을 요구하는 것(10억원 손해배상)도 없었는데도 잘못을 바로잡을 많은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것 아닌가요?



언론으로 인한 피해 구제의 마지막 단계인 민사소송에서 피해액을 산정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입니다. 소장에서 정정보도문을 1달 동안 게재하라는 것은 중재가 안 된 후 2달 이상(최초 기사 게재 후 약 3달간) 프레시안 홈페이지와 각종 포털 사이트에 기사가 노출돼 수많은 네티즌들이 읽은 것에 비하면 삼성전자로서는최소한의 요구인 셈입니다.

또한 브랜드 가치가 170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탈세를 하고 비자금을 조성한다고 보도되면서 막대한 이미지 손실을 입었습니다. 10억원 또한 삼성전자로서는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매일 500만원 이자와 연 20%의 이자 지급 조항의 경우, 최종 판결시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것은 성 기자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삼성전자가 정정보도문 1달 게재와 10억원 손해배상을 요구해 프레시안이 소송을 당한 것처럼 오도하는 것은 네티즌들의 정서를 이용하려는 여론몰이에 가깝습니다.



특히 소송 보도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처럼 쏟아 내는 삼성 관련 기사들과, 특별취재반을 구성하고 새로운 사실이 하나도 없는 내용을 여기저기서 발췌, 기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제되지 않은 단어를 나열해 가며 7회나 시리즈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이게 진정 프레시안이 추구하는 '국내 유일의 인터넷 고급 정론지'이자 '전문성·심층성·정론성을 갖춘 on-line 대안언론'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참언론의 길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제 경험을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앞에서 제가 대표적인 진보 종합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한겨레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는 한겨레가 가판을 내던 시절이었는데, 2005년 3월 28일 저는 가판 1면 머릿기사로 "은행 수수료 원가 6.5배 폭리"란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습니다. 은행들의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금융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던 때인데,은행들이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경영실적 자료를 토대로 만든 '국내 은행 수수료 수익 현황'이란 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것이지요.



기사가 나가자, 금감원은 물론 수많은 은행 홍보팀 관계자들이 회사로 몰려 왔습니다. 은행들이 금감원에 제출한 수수료 비용에는 인건비 등 일반 관리비 항목 중 일부 항목이 누락돼 있어, 은행이 폭리를 취했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는 게 해명 요지였습니다.

모든 해명을 들어본 뒤 담당 팀장과 데스크, 그리고 편집국장은 기사를 수정할 것이 아니라 아예 내리자고 했습니다. 이 기사를 쓰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저로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금감원과 은행 측의 설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매출과 원가 간 격차가 너무 큰 데다, 은행들이 스스로도 비용을 산출하지 못하는 수수료를 마구잡이로 올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들 해명을 기사에 기술적으로 반영하고 기사를 살릴 방법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사를 내리기로 결정한 것은 "기사의 팩트가 달라져 제목이 바뀌어야만 하는 상황이므로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지저분해진' 기사를 고집하는 것은 올바른 언론의 길이 아니다"라는 데스크의 말씀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한겨레 최초이자, 내일신문에 이어 종합 일간지 사상 두 번 째로 여성 편집국장이 취임한 날입니다. 그만큼 많은 언론계 인사들이 새 편집국장의 첫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습니다.

그런 날 1면 머릿기사가 삭제됐으니, 미디어오늘(2005년 3월 28일자 '한겨레, 자료 오독으로 1면 머리기사 삭제')에 기사가 나올 만도 했지요.



이 사건은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편집국장, 데스크, 팀장과 한겨레 구성원들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주위의 선후배들이 "잊으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기사도 쓸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 저는 너무너무 사랑하던 한겨레에 사표를 냈습니다.

저로서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지만, 여전히 그 날 한겨레의 결정은 옳았다고 봅니다. 이 날 한겨레가 보여준 용기가 진정 참 언론의 모습이 아닐까요?

프레시안의 이번 보도는 제품 가격과 물류 수송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매출의 90%가 수출에서 발생하는 삼성전자의 투자자와 거래선 입장에서 보면 신뢰 문제로 직결되는 중대 사안입니다. 실제 보도 이후 삼성전자가 프레시안을 상대로 즉각 소송을 제기하지 않자, 보도내용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투자자와 거래선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개별 거래선에 일일이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도가 사실과 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삼성전자와 프레시안간 소송과 관련해서 "삼성전자의 이런 행동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독자와 법원의 몫이 됐다"라고 했습니다.

성 기자님과 프레시안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립니다.



"프레시안의 이런 행동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판단에 앞서, 양식 있는 기자와 언론의 몫이 됐습니다"

성 기자님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 단계 성숙한 언론인으로 거듭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기성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등장했던 프레시안의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앞으로 프레시안이 멋진 진보언론, 참언론으로 우뚝 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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