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돈과 열애중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8.03.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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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부를 찾는 사람들

대한민국은 돈과 열애중


'평생 직장'이란 말도 이젠 사전에서나 찾아야 할 빛바랜 말이 됐다.

"내 손안의 돈은 자꾸 줄어들고 미래는 암울하다"는 불안 심리가 '재테크' 바람을 북돋운다.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이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재테크를 모르면 미개인 취급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안습펀드'(수익률이 나쁜 펀드)나 '일희일비족'(경제지표의 급등과 급락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한 투자자) 등의 재테크 관련 신조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로 재테크를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재테크도 공부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즉 재테크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 전공과목'이 됐다. 사이버 세상에서도, 서점에서도, 오프라인 학원가에서도 '재테크'가 가장 뜨는 과목이다.

◆ 재테크 까페ㆍ아카데미 '문전성시'



2월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 KRA부동산아카데미. 가족과 함께 할 즐거운 저녁시간을 잊은채 학원으로 달려온 30~40대 주부에서부터 60~70대 어르신까지 만학이 한창이다. 이날의 강의 주제는 '실전 재테크'. '부동산으로 부자되기'과정의 9번째 수업이었다.

강사가 칠판에 미로같은 아파트 단지 그림을 그려넣고 "어느 단지가 가장 좋은 곳일까요?" 하고 질문을 던지자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 든다.
"1번 9명" "2번 10명" ...." 고3 입시수업을 방불케하는 진지한 공기가 수업 내내 교실에 감돌았다.

이날 수업을 듣기 위해 경기 남양주시에서 왔다는 주부 노모(39) 씨는 "부동산에 관심이 있어 공개 강의를 한 번 들어본 후 본 강의를 등록했다"며 "11회의 강의료가 55만원이라 좀 부담이 됐지만 부동산 지식을 쌓으면 자기계발도 되고 재테크도 될 수 있어 남편이 적극 밀어준다"고 말했다.


50대의 김모 씨의 열정 역시 여느 젊은이 못지 않았다. 그는 "언론이나 전문가에 따라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지식을 쌓고 싶다"고 했다.

요즘 들썩일 기미가 보이는 부동산관련 교육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하락장임에도 주식아카데미는 주식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성황이다.



전익균 새빛증권아카데미 대표는 "한 달에 다녀가는 사람들이 1000명이 넘는다"며 "지난해 11월 아카데미의 문을 연지 채 3~4개월이 안돼 1층 80석의 대규모 강의실을 새롭게 오픈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묻지마' 투자 바람은 사그러들고 있다. 설혹 투자에 실패해도 예전같으면 잘못된 정보를 준 전문가를 원망했다면 지금은 본인의 준비가 덜 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전 대표는 "우리나라 재테크 시장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비단 우리사회의 재테크 열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이들 아카데미만이 아니다. 최근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545명을 대상으로 "현재 재테크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 약 47%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앞으로 재테크 할 의사가 있는가"란 질문에는 98%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곳곳에서 뜨겁게 감지된다. 지난해 연말 발표한 네이트 모바일 서점이 '2007 베스트셀러 10'을 집계한 결과 1위를 포함한 무려 6개의 도서가 재테크, 자기계발서였다.

인터넷 까페에서도 '재테크 까페'가 인기다. 다음의 경제·금융 카테고리 카페 수는 무려 10만7563개에 달한다(2월28일 기준). 이쯤되면 '재테크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 버는 과정을 즐겨야 '완소 재테크'



사실 재테크는 어제오늘만의 화두는 아니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는 '척척박사 철학자 탈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돼 있다(http://blog.naver.com/omrom/80005839774).

<탈레스는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다. 하지만 돈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런 탈레스를 조소했다. "똑똑한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 거 보면 쓸모없는 철학을 해서 그런가봐."

탈레스는 사람들이 자신뿐 아니라 철학에 대해서도 비웃자 생각을 바꾸었다.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우선 탈레스는 기상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음해 올리브 수확이 많을 것을 예견했다. 모든 올리브기름 짜는 기계를 독점했다. 마침내 예견대로 올리브가 풍년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올리브 기름을 짜기위해서 탈레스에게 몰려갔다. 탈레스는 돈을 버는 방법을 안 것이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테크의 화두는 같다"는 제목의 이 글을 보면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새삼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재테크가 특별한 소수의 관심사가 아니라 ' 전 국민의 전공필수'로 자리잡은 분위기일 것이다.

이러한 대단한 재테크 광풍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허황된 부자의 꿈만 부풀려 놓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재테크 열풍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갈까 우려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은 다음과 같이 '부자되기'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김 소장은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높아도 정작 돈 버는 과정을 즐기는 이는 극소수다"며 "대부분 돈이나 돈 쓰는 것만을 좋아하는데 뜬 구름 잡는 '돈 욕심'이 아니라 '돈과 아름답게 연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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