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아나운서' 꿈 꽃피우는 봄 올거예요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8.02.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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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나눔.. 성연미 봄온아나운서아카데미 원장

열정, 희생, 노력....얼핏보면 마치 까페인 것처럼 노랑 연두 주홍 등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벽엔 글귀들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때가 온다."
"훌륭한 직업은 시종일관 자기 희생과 투지 그리고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일은 정열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서울 신촌역 사거리에 자리잡은 (주)봄온아나운서아카데미(이하 봄온)의 성연미 원장(45)은 그러한 정열로 한겨울에도 '봄날'을 맞고 있었다.
'장애인 아나운서' 꿈 꽃피우는 봄 올거예요


봄온은 2003년 8월 문을 연 뒤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내 대표적인 아나운서 양성기관으로 발돋움했다. 2008년 MBC 신입아나운서 공채 4명 합격자 전원을 배출한 것을 비롯해 모두 800여명의 아나운서를 방송사에 입성시킨 아나운서 교육의 산실이 됐다.

"아나운서일 때는 항상 갈증을 느꼈는데 교육자로서 나선 뒤에는 그런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기뻐서 볼을 꼬집어볼 정도로 제겐 '하늘의 축복'과 같았죠." 성 원장은 여전히 행복한 꿈에 젖어있는 것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나운서를 할 당시에는 미처 몰랐는데 교육자로서의 재능이 더 큰 것 같다"고 기뻐했다.



◆ 교육자로서의 축복, 나눔으로 사회 환원

봄온의 탄생은 아주 우연히 이뤄졌다.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쉬고 있을 무렵 어느 한 후배가 아나운서의 기본을 가르쳐달라고 자문을 구해왔고 그 한 명이 다시 또다른 한 명을 데려오는 식으로 그렇게 꼬리를 물고 제자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가르친 제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수료증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를 위해 교육기관 인가를 받은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우연이 축복이 됐고, 이후 예기치 않았던 행운은 더 큰 사랑으로 피어났다. "복을 받은 만큼 꼭 나누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죠." 나눔의 정신은 '공인'으로 반듯한 삶을 보여야 하는 아나운서의 소명이기도 했다.


그는 아카데미 설립 이후 소년소녀 소액 지원 활동과 화상장애인 돕기 등에도 나섰는가 하면 교육생들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읽는 녹음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펴오고 있기도 하다. "녹음 봉사활동은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는 리딩 연습이 되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더할나위 없이 좋은 봉사활동"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봄온의 나눔운동은 지난해부터 '장애인 아나운서 교육'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사회공헌 운동으로 한발짝 더 나아갔다. 아나운서 교육양성의 노하우와 시스템이라는 재능 기부로 장애인들의 꿈을 지원하는 것이다. 장애인 방송인 지망생들에게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기회가 됐다.



봄온은 지난해 8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과 함께 장애인 아나운서 지망생 5명을 선발해 11월까지 총 10회의 수업을 진행했다. 비록 짧은 시간의 교육이었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 이들 졸업생중 1명은 현재 KBS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고 2명은 한국장총과 복지TV와 공동 운영하는 장애인미디어센터 바투의 아나운서로 활약 중이다.

"장애인 방송 교육생들은 신체가 조금 불편하다는 것을 빼곤 다른 면에선 비장애인들보다 뛰어난 점이 많았어요. 장애를 극복하신 분들이기 때문인지 특히 지혜롭고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또 일반 학생들은 툭 하면 지각을 하는데 반해 장애학생들은 이동이 불편함에도 언제나 일찍 와서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곤 했습니다."

장애인 아나운서 교육과 비장애인 교육에서의 차이점을 묻는 '우문(愚問)'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장애인을 일반인과 별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인이라는 점이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격도 아니고 무엇보다 전문 직업인이 되려면 장애 유무를 떠나 제대로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았던 경험의 영향인 것 같았다. 성 원장은 "조카가 장애가 있고 친구 아들도 장애가 있어 장애인과의 만남이 낯설지 않다"며 "우리 역시 지금은 장애가 없다 해도 그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는 결코 천사가 아닙디다. 도움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는 것이라 여겨요. 지금은 제가 조그만 도움을 주고 있지만 언젠가 저도 도움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아나운서 탄생, 희망이 되었으면

3년 여 전 KBS관련 행사로 만나게 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의 말도 그에겐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장애가 있으면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쉬운데 희아 씨는 오히려 장애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가치를 부여했어요. 손가락이 네 개가 아닌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이렇게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요."



성 원장이 화상장애인 돕기에 나서게 된 것도 그러한 희아 씨 때문이었다. 행사 현장에서 기부금 전달 의사를 밝힌 그에게 희아 씨는 "화상어린이협회에 기부금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애인 아나운서' 꿈 꽃피우는 봄 올거예요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 이것이 아나운서를 꿈꾸는 교육생에게 그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키가 작다, 지방대 출신이다, 장애가 있다, 이런 조건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포기해도 되는 변명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키 작은 아나운서를 보지 못했다면 '바로 당신이 그러한 1호 아나운서가 되라'고 조언하죠."

장애인 방송인의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도 특히 그러한 용기를 강조했다. "방송에서 장애인 아나운서를 보지 못했다고 방송국은 장애인은 뽑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혹 장애인들이 지레 포기하고 도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냉철하게 돌아보라고 했다.

"이봉조,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꼭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아니죠. 지쳐도 달리고 넘어져도 일어나는 그들의 투혼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아닐까요?"



성 원장은 "선구자적인 장애인 아나운서가 탄생하길 진심으로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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