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신뢰의 위기' 그 이후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7.12.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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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시장에서 막 물러날 무렵인 지난해 6월 하순. "친기업적 정책을 펴도 기업들이 믿지 않는다. 이미지가 고착된 때문이다." 그는 당시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참여정부의 한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펴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이 화답하지 않는다면 제 효과를 내지 못한다. 명분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앞서 이해당사자들이 정부를 미덥지 않게 보고 있다면 정책 실패는 불을 보듯 훤하다.



이 당선자가 지난 20일 첫 공식 회견에서 "지난 10년 동안 규제가 특별히 많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시장적·반기업적 분위기로 기업인들이 투자를 꺼려왔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사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 당선자가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데는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는 바람도 담겨 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당선으로 기업들의 (대 정부)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경제 회생의 관건인 투자 제고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나아가 경제인들을 직접 만나 새 정부가 투자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기업인들의 기대감도 결코 작지 않은 편이다. 당장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26일 발표한 내년 경제전망 보고서에는 이런 기대감이 반영됐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 경색이나 세계경제 둔화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두달 전의 5.1%로 유지했다.

연구원은 성장지향적이고 친시장적인 새 정부 출범이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감안됐다고 설명했다. 곧 새 정부 출범이 최근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일반기업뿐 아니라 금융계도 경영 일선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 당선자가 복잡한 현안을 신속히, 시장 친화적으로 결정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금융계는 국책은행의 민영화나 보유지분 매각 등 인수·합병(M&A)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들이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당선자가 기업이 신바람나게 투자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참여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일자리 창출도 한결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투자여력을 높이고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리는 선순환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에 미더운 정부를 만드는 일이나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친기업·친시장 마인드는 투자나 성장 제고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업종별·규모별로 '친기업'에 대한 눈높이가 다를 뿐더러, 성장의 소외계층에게서 기업만 챙긴다는 불만이 나올 여지도 있다. 기업인들의 기대감이 크다는 점도 장차 부담이 될 수 있다. 선거에선 '경제대통령'으로 승리했지만 앞으로는 '정치대통령'의 면모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당선자는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기를 잡았지만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는 보다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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