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명박 당선자의 좌파 공약

이상배 기자 2007.12.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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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명박 당선자의 좌파 공약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한나라당 후보 맞나요? 어떻게 민주노동당보다 더 급진적인 대책을 들고 나왔죠? 이 당선자의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대사면' 공약을 두고 한 금융권 사람이 한 말이다.

신용불량자의 연체기록을 일괄삭제하겠다는 게 이 당선자의 공약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방안보다 더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심 의원은 개인파산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내놨었다. 빚이 일부 탕감되긴 하지만, 과거에 빚을 제대로 갚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은 물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공약에 따르면 신용불량자 240만명은 더 이상 과거 채무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연체는 없던 일이 되고, 이자는 감면된다. 이회창 전 무소속 후보가 이 당선자를 두고 '좌파'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금까지 정부는 신용불량자 대사면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빚 안 갚고 버티면 정부에서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심리가 생겨 신용질서가 어지러워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 마당에 정부도 더 이상 반대만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정부는 최근 신용불량자 대사면 방안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신용불량자에게 다시 금융거래 기회를 주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다른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용불량자 대사면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이 과거의 외환거래 내역을 모두 삭제해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연체기록 삭제는 은행더러 돈 빌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빌려주라는 얘기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신용불량자들의 거래내역을 순순히 말소할 지도 미지수다. 헛공약에 그친 DJ의 '농가부채 탕감' 공약도 오버랩된다.


멀리 볼 때 '신용불량자 구제'와 '신용질서 유지' 가운데 어느 게 중요한 지 이 당선자는 깊이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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