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명령하지 않는 법

김지룡 외부필자 2007.11.29 12:40
글자크기

김지룡의 가슴높이 어린이 경제교육

딸아이를 10년 간 키워오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주 잘 짜여진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다는 점이다. 이것 이상으로 사람을 인간적으로 성숙시키고 능력을 성장시키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노력하는 경우에 한하겠지만.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정기적인 용돈을 주던 날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일주일 용돈으로 2000원을 받았다. 그 돈을 주면서 아내와 나는 딸아이에게 ‘작은 돈이지만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딸아이에게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왜 돈을 함부로 다뤄?”
딸아이는 나와 아내가 돈을 아무데나 둔다며 타박을 했다. 사실이 그랬기 때문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내게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바지 호주머니에 동전이 있으면 꺼내어서 아무데나 두는 버릇이 있었다. 아내도 집 앞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받은 거스름돈을 식탁에 올려놓는 일이 많았다. 딸아이 눈에 돈을 함부로 다루는 일로 비친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먼저 부모가 좋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고민 끝에 빨간 돼지저금통을 하나 마련했다. 딸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아무데나 놓아둔 돈이 눈에 띄면 모두 저금통에 넣으라고 했다. 저금통이 가득 차면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겠다고 하자 딸아이는 눈에 불을 켜고 집안에 굴러다니는 돈을 모았다.



1년 정도 지나면서 엄마 아빠의 나쁜 버릇이 많이 고쳐졌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딸아이가 돼지저금통에 돈이 넣을 때마다 부모로서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다며 반성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하나씩 익혀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부모만이 지닌 특권일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 글씨를 쓰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춤을 추는 것 같은 일들이다.

밤늦게 귀가했을 때 아내가 딸아이가 새로운 노래를 익혔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일이 많았다. “아빠 우리 딸이 오늘 뽀뽀뽀 노래를 배웠어요.”
아빠인 나는 딸아이에게 바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 노래 좀 불러 봐.”


어느날 내가 아이에게 무척 명령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해 봐라’ ‘춤 춰 봐라’, ‘글씨 써 봐라.’
내 스스로도 어렸을 때 제일 싫어했던 것이 어른들의 명령이었다. 20년 전 신입사원으로 일을 할 때 노래방이 싫었던 것은 상사가 ‘야 노래 한 곡 뽑아봐’ 같은 식의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일을 아이에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령을 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말투를 사용하면 명령하지 않고도 내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뽀뽀뽀 노래 배웠어? 우리 딸 노래를 듣고 싶네. 네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새로운 춤을 배웠다면서. 얼마나 잘 추는지 보고 싶네. 아빠에게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이런 말투는 아이에게 결정권을 준다. 아이의 자율성을 살려주는 말이다. 혹시 이런 말투로 말을 했을 때 아이가 거부하더라도 삐치시지 말기 바란다. 아이도 노래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명령조의 말을 하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었다.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 일이 많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아이가 뜨거운 것을 만지려고 하거나, 차도에 들어가려 할 때 무의식적으로 “안 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런 말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왜 하면 안 되는지 이유가 전달되지도 않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 심리이기 때문이다.



아동심리학 책을 뒤적이면서 이런 경우는 ‘뜨거워’ ‘위험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와 상황을 말해주면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아이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딸아이를 키울 때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했던 일이 둘째인 아들아이를 키울 때는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다섯 살인 아들아이는 열 살인 딸아이의 물건을 많이 탐낸다. 얼마 전에 아들아이가 딸아이가 아끼는 수첩을 몰래 들고나와 낙서를 하려고 했다. 그대로 두면 딸아이와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일이다. 아들아이에게 “누나에게 허락 받았니?”라고 물었다. 아들아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누나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다. 딸아이는 수첩 대신 쓰지 않는 노트를 주었다.



아들아이와 아이가 함께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아들아이가 계단에서 장난을 쳤다. 오래 전 같으면 “안 돼. 올라와”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놀면 문이 열리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 내리지 못하는데”라고 말했다. 아들아이는 바로 올라왔다.

경제교육을 시작하면서 용돈을 이용한 것도 어찌 보면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정한 용돈을 주는 것은 아이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주는 일이기 때문에 “안 돼”라고 할 일이 줄어든다.

아이가 사달라고 모든 것을 다 사줄 수는 없다. 아이의 버릇을 해치는 일이고,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일정한 용돈을 주면 이런 문제가 쉽게 풀린다.



딸아이가 과자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너도 용돈이 있잖니?”
용돈이 다 떨어졌다며 사정을 하면 이렇게 말한다.
“참 안됐구나. 다음 번 용돈 받을 날까지 기다리야겠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