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서 경영 배워라" 총수들 애정각별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07.12.0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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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기업과 한국프로야구단(上)

프로야구의 스토브 리그가 한창이다. 정규 시즌과 시리즈가 끝나는 10월 이후가 되면 야구팀들은 긴 겨울에 들어간다. 난로 주위에 모여 앉아서 다음 시즌을 위한 협상, 재계약, 트레이드를 하는 것을 빗대 스토브 리그라는 말이 붙여졌다.

난로에서는 석탄이나 석유가 타지만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에서는 돈(머니)이 탄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의 최대어인 두산 김동주 선수에게 제시된 60억원대의 돈도 올 스토브리그의 최대 땔감이다. 프로야구가 전체적으로 적자를 면치 못 하는 상황에서 스토브리그의 땔감은 대개 해당 구단이 속한 그룹 총수의 의중과 맞닿아 있다.



야구 다이아몬드의 푸른 잔디가 선수들의 몫이라면 휴한기의 또다른 주역은 프런트(구단 실무 운영자)다. 그리고 그 뒤에는 총수들이 자리한다. 1982년에 출범해 25살 청년이 된 프로야구 역사를 돈과 총수의 면면으로 풀어봤다.

◆ 원년 멤버 삼성ㆍ롯데...총수 애정도 각별



25년 동안 구단의 문패가 바뀌지 않은 곳은 세곳이다. 삼성과 롯데, 그리고 두산이다. 두산은 원년에는 OB로 출발했지만 두산그룹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이들 중 삼성과 롯데는 현재 그룹 회장인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회장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명문구단 삼성 라이온즈는 국내 최대그룹 삼성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또 이건희 회장과 삼성라이온즈의 관계는 통상적인 구단주와 구단 이상의 관계로 각별하다.

1981년 정부로부터 프로야구단 창설의사를 타진받은 삼성그룹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 중심으로 발빠르게 움직여 당시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팀을 발족시켰다. 초대 구단주는 이건희 당시 부회장, 구단 사장은 이수빈 당시 제일모직 사장이었다. 제일모직은 당시 제일제당(현 CJ)과 함께 삼성그룹의 대표계열사로 구단의 그룹내 위상을 짐작케 한다. 이수빈 사장은 그뒤로 구단주로 활동하기도 했다.


구단에 따르면 이건희 구단주는 초창기 선진 야구기술의 접목과 어린이 등 아마야구 저변확대도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삼성은 일본과 미국의 야구 영웅 나가시마와 행크 아론을 초청해 창단초기 구단을 방문토록 했고 이 구단주가 회장으로 승진한 이후인 90년대에는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해 홈런왕 이승엽, 에이스 투수 배영수 등 꿈나무를 발굴했다.

호화군단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85년 반쪽 우승(한국시리즈 없이 전후기 리그 모두 우승)을 제외하고는 무관에 머물렀던 삼성라이온즈가 도약하게 된 것(2002년, 2005 ~ 06년 연속 우승)은 심정수, 박진만, 마해영, 임창용(이상 선수), 선동렬, 김응룡(이상 감독) 등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의 방침인 S(슈퍼)급 인재 영입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감독출신 구단 CEO로 처음 발탁된 김응룡 사장은 취임 당시 "내가 사장이 될 수 있도록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낙점하고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선수협 활동 등으로 FA시장에서 미아가 될 뻔 했던 양준혁을 현재의 삼성으로 다시 끌어들인 것도 김응룡 사장이 감독으로 오면서였다.

하지만 삼성이 막강한 그룹의 자금력으로 우수 선수들을 끌어모으자 야구계 안팎에서 반발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야구에 대한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것. 삼성그룹이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을 갖고 있는 재계에서의 위상에서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간 끊임없이 경영권 불법 승계 시비, 비자금 문제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최근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롯데는 신격호 회장이 오랜 기간 구단주를 맡았고 연고지(부산)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문화로 알려져 있다. 롯데가 최근 성적이 부진하자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뜻의 구호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가요 부산 갈매기는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응원가로 쓰인다.



국내와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신 회장의 한ㆍ일 재계의 위상처럼 롯데는 일본의 선진 야구 문화를 국내에 두루 접목하기도 했다. 84년 삼성 이만수와 타율 1리차로 타격왕을 겨뤘던 홍문종은 재일 동포 야구선수(그는 시즌 막판 9연타석 볼넷으로 타격왕 기회를 잃었었다)였고 일본인 코치 도위창을 6년여간 팀 코칭스태프로 뛰게 하기도 했다.

또 롯데는 신 회장의 아들인 신동빈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으로 있는 일본 프로야구팀 지바 롯데 마린즈에 국내의 대표적 홈런타자 이승엽을 영입해 2005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수입만이 아닌 수출로도 재미를 본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것도 지바 롯데의 발레타인 감독과의 의견 교환 과정과 회장단 면접 등을 감안하면 그룹 수뇌부의 뜻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껌 등 제과사업을 바탕으로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를 엮어낸 신 회장은 그룹의 짠물경영을 구단에도 그대로 적용했다는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 두산ㆍSK, 그룹 이미지 구단에도 그대로

두산은 맥주, 식품 등 소비재 위주에서 두산중공업, 인프라코어 등 중공업 기반의 그룹으로 환골탈태한 그룹의 역사가 야구단에도 배어있다. 99년 OB베어스에서 두산베어스로 이름이 바뀐 것은 구조조정에 매진하던 그룹의 전략적 선택과 맞닿아 있다.



두산베어스 임원 변동도 그룹이 겪었던 시련과 이에 대한 극복노력이 스며있다. 두산베어스는 지난해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형제를 구단 임원에서 제외시키고 또다른 형제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을 신규 선임했다.

2006년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형인 박용오 전 회장과의 갈등 속에 불거진 회사돈 횡령과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물의를 빚자 2선 후퇴를 결정했다. 이들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당시 그룹 회장직과 부회장직을 동반 사임했다 최근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야구단에는 복귀하지 않았다.

형제간 분란으로 사실상 그룹과 직간접 인연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박용오 전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으면서 지난 2005년 이후 이미 두산베어스 임원진에서 제외된 상태다. 박용오 전 회장은 80년대 초 베어스 초대 사장에 취임한 뒤 지난 98년 11월 KBO 총재로 취임하기 전까지 베어스 구단주를 지낸 바 있다.



두산은 우수 선수를 연이어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면서 보수적인 운영을 고수했지만 최근 FA시장에서 김동주를 잡기 위해 60억원대의 거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박철순 이후 뚜렷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다는 현실을 감안했다는 설명도 있지만 이보다는 두산중공업, 인프라코어 인수 이후 확 바뀐 그룹의 체질변화와 연결짓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과거 수년 동안 두산은 김상호, 김상진, 진갑용, 진필중, 박명환 등 구단의 대표선수들을 연이어 타 구단에 빼앗기거나 넘겼다.

두산은 올해 해외 중공업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수ㆍ합병(M&A)의 대상을 국내에서 해외로까지 넓힌 상태다. 이 같이 변화된 이미지를 국내에도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서 야구단에도 통큰 행보를 접목시켰다는 것.



뼈를 깎는 체질변화라는 말은 SK에 꼭 어울린다. SK 최태원 회장은 과거 분식회계와 카드채 대란 등으로 위기를 겪었지만 수년 전부터 완전히 기업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명경영의 척도로 불리는 지주회사 체제를 그룹에 접목시켰고 행복날개라는 구호아래 연탄수레를 끄는 등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이다.

이 같은 그룹의 도약을 입증하듯 SK 야구단도 올해 창단 첫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페넌트레이스에 강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김성근 감독이 외인부대 베테랑 선수 김재현, 조웅천, 박재홍과 코치 이만수 등을 이끌고 이룬 성과다.

SK그룹의 양대 주력사업인 이동통신과 에너지사업이 초창기에 창업보다는 인수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하지만 노쇠하거나 성숙되지 않은 기업을 이끌고 거대기업으로 몸집을 키운 것은 타사와 견주기 힘든 SK만의 장점이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최태원 회장은 한국시리즈 3, 5, 6차전 경기를 직접 관람할 정도로 야구에 애정을 보였다. 그룹 오너가 일반석에 앉아 소속팀을 응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가 서울의 야구 명문 신일고 출신이라는 것도 그만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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