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치일뻔 했던 어느날 아침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11.0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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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분위기 됐으면

1. 여느 날이나 다름없던 출근길이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부랴부랴 기자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날 갈 기자실은 큰 길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약 30여미터 정도 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건물에 있었다. 골목길 들어서 한쪽편에서 걷다가 아무 생각없이 반대편인 건물쪽으로 건너 가려는 찰나였다.

'끼이익∼'. 기자와 채 50c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검은색 대형 승용차가 급정거했다. 골목길이라 마음을 놓은 채, 그날 할 일을 생각하느라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 오던 차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차 안에 있던 운전자는 기자를 잠깐 노려보더니 이내 제 갈길을 갔다. 급정거 순간, 기자는 너무나 놀라 약 3초 정도 멍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차는 저멀리 빠른 속도로 내닫고 있었다. 분명 골목길은 차보단 사람이 우선인 이면도로였다.

물론 뒤를 잘 살피지 못한 기자의 책임도 있지만, 차도가 아닌 골목길에서 그렇게 심한 속도로 달리다니. 또 사람을 칠 뻔 했으면 "괜찮으냐"는 말 한 마디라도 건넬 만 하련만, 괘씸하게도 그 차는 아무말 없이 가던 길을 계속 내달렸다.



아마도 그 차의 운전자 입장에선 기자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별 시덥잖은 놈이 내 차 앞에서 얼쩡거려 사고내서 큰 손해를 본 뻔 했네' 뭐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자 입장에선 하마터면 크게 몸이 상할 뻔 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니 분한 기분이 들었다.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종류와 번호판을 유심히 살폈다.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번호판의 네자리 숫자와 차종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고발을 하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기자실에 도착해 눈에 띄는 빈 종이에다 메모를 했다.

하지만 웬걸. 바쁜 일과에 휩쓸리다 보니, 메모지가 어디 갔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잃어버린 듯 했다. 아쉬웠다. '그렇게 무례하고 사람 다치는 걸 우습게 보는 인간은 크게 혼을 내줬어야 하는데…그냥 바로 경찰에다 신고할 걸.'


2. 어린 시절 기억이 났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다가도 멀찌기 차가 보이면, 누군가가 '차 온다'라고 외쳤다. 그러면 모두들 골목 양 옆으로 붙은 채 잠시 기다렸다. 그러면 차는 그 사이를 당당하게(?) 지나갔다. 차가 아이들이 비켜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알아서 차 지나갈 길을 비켜줬던 셈이다.

어른들에게 항상 교육을 그렇게 받았던 결과였다. 늘 "차가 오면 미리 비켜서 있으라"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고 자랐다. 자동차는 사람이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교육을 받게 된 걸까. 평론가 진중권이 쓴 책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인은 오랜 세월 자연에 몸을 맡기는 농경문화속에 살았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근대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산업화를 위해 갑자기 '기계화된 신체'를 요구받게 됐다. 사람이 인격체가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군사정권을 통해 더욱 공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사람의 신체가 기계화되면서 점차 그 정신마저도 '물질 우선'으로 변해간 듯 하다. 더구나 급격하게 경제가 발전하면서 '물질 만능'의 사회분위기는 더욱 공고해졌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던 기자가 겪은 일을 개인의 인성 문제로 국한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운전자의 무례속에는 '사람보다는 물질을 우선'하는 사회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도 분명 논리의 비약은 아닌 듯 하다.

3. '물질 우선'인 사회분위기를 낳은 '기계화된 신체'와 이를 통한 산업화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물리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이른바 '지식사회'라는 21세기에 와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거대한 공장이나 토목공사를 통한 시설보다는 '창의력'을 통한 지식서비스와 콘텐츠가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껏 해오던 것처럼 물질을 사람보다 우선시해서는 당연히 이런 창의력 같은 것이 생길리 없다.

사람이란 존재는 대접받는 만큼, 행동하는 법이다. 사람을 이윤을 높이기 위한 도구나 비용절감의 걸림돌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할 때, 사람은 상상 이상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보다 많이 배출되도록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따뜻하게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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