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PF' 뇌관 제2, 제3의 신일 부를까

머니투데이 강종구 기자 2007.07.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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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건설사 현금흐름 악화… 수도권 미분양 확산시 '치명타' 가능성

'건설PF' 뇌관 제2, 제3의 신일 부를까


매출액 3000억원대 중견 주택전문 건설업체인 A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아파트 건설로 지난 수년간 급성장했다. 그러나 공격적인 확장경영으로 지난해말 현재 시행사와 관계사 지급보증이나 연대보증에 따른 PF 우발채무는 무려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A사는 지난해 400억원대의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은 160억원 수준에서 90억원에 가까운 적자로 둔갑했다. 회계상으로는 화려한 실적을 자랑할만 했지만 현금흐름이 꼬여 버린 것이다.



비단 A사 뿐 아니라 지난해 주택건설을 전문으로 취급하면서 매출액 2000억~5000억원 규모의 중견 건설사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중 상당수 업체들은 외형이 급격히 커지면서 과도한 PF 우발채무 부담도 함께 안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무늬만 흑자..현금은 적자



국내 건설사(자산총액 70억원 이상 외감법인 대상)들의 업체당 평균 당기순이익은 2005년 38억8100만원에서 소폭 증가, 사상 최대인 39억300만원을 기록했다.

특히 몰라보게 좋아진 것은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창출력으로 2004년 1억7200만원에 그쳤던 영업활동 현금수입이 2005년 16억8500만원, 지난해 25억9300만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는 주로 대형 건설사에 해당되는 얘기다. 대형사들은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분양경기가 좋은 수도권 위주의 주택사업, 자금력을 요하는 SOC사업, 턴키 등 대형 공공공사를 독식하며 호황을 누렸다.


매출액 5000억원 이상 대형사들이 올린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914억원으로 사상 최대. 2005년 791억원에서 큰 폭 증가했다.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한 현금수입도 408억원에서 637억원으로 큰 폭 증가했다.

'건설PF' 뇌관 제2, 제3의 신일 부를까
주택건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견 건설사들은 사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168억원에서 123억원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다. 정작 대형사와 차이가 심한 것은 현금창출능력으로 2005년 99억원에 달했던 영업활동 현금수입이 지난해 5억8100만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A사와 마찬가지로 상당수 중견 건설사들의 상당한 이익을 냈지만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장부상만 이익`이었던 셈이다.

현금흐름 악화는 영업활동 뿐 아니라 투자비나 차입금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견 건설사들이 업체당 지불한 투자비는 평균 183억원으로 2005년 82억원에서 100억원 이상 급증했다.

영업활동에서는 현금이 들어오지 않고 투자비 지출은 급증했으니 당연히 돈이 말리기 마련. 부족한 유동성을 메우기 위해 중견 건설사들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업체당 19억원의 자기자본을 늘렸고, 159억원의 차입금을 조달했다. 이중 17억원은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는데 썼다.



◆'PF 덫'에 걸린 신일의 교훈

중견 건설사 현금흐름이 악화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 분양경기 침체로 공사대금 수령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무리한 외형확장으로 PF관련 우발채무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부도를 낸 신일은 무리한 수주 후 분양실패로 건설사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신일은 대구지역 수건의 공사에서 극심한 실패를 맛본 후 인천과 동탄등 수도권 인근에서 대반전을 노렸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신일은 지난해 18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부채가 597억 늘었지만 자산은 그보다 훨씬 큰 877억 증가했고, 그중 대부분인 787억원이 유동자산이었다. 유동부채 대비 유동비율이 148%에 달해 지표상으로는 단기 상환능력이 매우 양호해 보였다.

그러나 장부상으로만 이익이 났을 뿐 영업활동 현금수입은 무려 756억원 적자였다. 뿐만 아니라 유동자산 2024억원중 절반이 넘는 1154억원은 공사미수금으로 전년대비 55% 증가했다. 공사수익이 17% 증가하는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유동자산 증가는 단기 상환능력의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요인이었다. 선급금과 단기대여금 등이 급증한 것이다. 2005년말 66억원에서 지난해말 640억원으로 거의 10배에 가깝게 늘었다. 단기대여금도 20억원에서 49억원으로 급증했다.



선급금이 증가하면 자산은 증가하지만 영업상 현금흐름을 줄어든다. 단기대여금은 영업상 현금흐름이 아니라 투자비 지출로 분류되지만 역시 현금유출을 동반해 유동성이 악화된다.

◆ 장부엔 없는 PF 우발채무..그래도 흔적은 남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선급금과 단기대여금의 정체, 즉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현금이 지출됐느냐 하는 점. 대부분 선급금과 단기대여금의 급증은 도급공사의 대규모 수주에 따른 PF 우발채무가 재무제표에 남겨 놓은 흔적과 같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아파트 건설사업을 할때 대부분 건설사가 시행사에 토지매입 등을 위한 사업초기 비용을 대주고, 보통 선급금이나 단기대여금으로 처리한다"며 "사업승인이 지연되거나 분양부진으로 시행사가 돈이 없을 때는 금융기관 차입금 이자를 대신 내주고 이 역시 선급금이나 대여금 등으로 잡는다"고 말했다.

선급금이나 단기대여금 뒤에는 PF 우발채무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시행사는 시공사에서 빌린 돈을 바탕으로 금융기관 (PF)차입금을 일으켜 토지를 매입하고 기타 사업비용에 충당한다. 금융기관 차입금은 거의 예외없이 시공사가 연대보증이나 지급보증을 선다. 대차대조표에는 기록되지 않는 PF 우발채무다.

신일의 선급금이나 단기대여금 역시 시행사에 빌려준 사업초기비용과 이자 대납금일 공산이 크다. 신일의 시행사들은 지난해 대부분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 수도권에도 미분양이 속출한다면...

지난해 중견 건설사의 자금흐름 악화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독 중견 건설사에서만 영업상 현금 적자가 발생하고 투자비와 차입금이 급증한 것은 중견 건설사들중에 주택전문건설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고, 이들이 무리한 외형확장에 나서면서 PF 우발채무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지방을 위주로 분양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건설PF' 뇌관 제2, 제3의 신일 부를까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대형 및 중견 건설사들의 투자비 지출이 급증했는데, 대형사들은 장기투자증권이 급증한 것과 달리 중견 건설사들이 지출한 투자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동자산이었다"고 말했다. 시행사에게 준 단기대여금이 크게 늘어났음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앞으로 중견 건설사들의 관건은 당기순이익이 얼마인지가 아니라 현금흐름이 제대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전망이다. 분양이 잘 돼서 공사대금을 차질없이 받고 시행사 PF 차입금을 떠안지 않아도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급격한 현금부족에 빠지고 우발채무가 현실화 되면서 자금조달 줄까지 막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낙관할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영남 등 지방의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시행사들이 늘고 있고 시행사 차입금을 시공사가 대신 떠안는 사례도 쌓이고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PF 우발채무를 자발적으로 시공사가 떠안는 경우는 그나마 대형사거나 현금여력이 풍부한 건설사가 대부분"이라며 "중소형 건설사들의 경우에는 시행사 이자를 대신 내주며 차입금을 계속 만기연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반기에도 분양경기가 살아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대형사와 중소형 건설사의 신용등급 차별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지방에 이어 수도권에서마저 미분양이 늘게 되면 PF 우발채무가 많은 건설사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 경우 건설사 PF 우발채무로 인한 금융권 혼란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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