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식자공을 기억하라

머니투데이 부자전도사 외부필자 2004.09.03 14:58
글자크기
대학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대학신문을 발행하는데 학생기자로 일하였다. 주 중에는 교내를 다니면서 취재를 하거나 외부 필진들의 원고를 받으러 다녔고, 금요일까지 원고를 마감한 후 토요일 오후에는 신문을 인쇄하러 조선일보사에 간다. 일요일은 신문을 발행하지 않아서 토요일 오후에는 외부 인쇄를 하였다.

특집 기사들은 미리 원고를 넘겨서 아침부터 준비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시사성 있는 기사들은 마지막까지 지면에 맞추어서 기사의 크기를 조정하여야 하고 인쇄 들어가기 전에 조판한 신문의 교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 10시 반까지는 인쇄용 원판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한다.



간신히 교정을 마치고 근처의 단골 일식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있으면 11시가 조금 지나서 총무가 인쇄에서 처음 나온 신문을 가지고 왔다. 11시 반이 되면 통금시간에 쫓겨서 변변히 인사도 하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사라지기에 바빴다. 신문을 만든다는 자부심에 일이 즐거웠고 월요일 아침 학교에 올라가는 길목마다 학생들이 신문을 읽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였다.

처음 신문사에 들려서 관련부서의 하는 일과 담당자에게 인사를 할 때 대형 윤전기의 규모와 속도에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한 층 가득한 활자와 원고를 가지고 조판할 활자들을 고르는 식자공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자 없이 빠르게 활자를 고르는 식자공은 마지막 시간에 쫓길 때는 가장 인기가 좋았다.



가판에서부터 지방판, 서울판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신문 인쇄에 매일 밤늦게 근무하면서 가족들이 놀러 가자고 할 때 변변히 놀러 한 번 가지 못하고 열심히 일을 한 신문사 식자공들은 봉급도 일반 기자보다 높았고 전문 기능직으로 인정을 받았다. 신문을 발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 또한 높았다. 납중독의 직업병에 노출되면서도 돼지고기에 한 잔의 소주로 납을 씻어낸다고 위로하며 회포를 풀던 그 식자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인쇄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식자공들이 흘린 땀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감쪽같이 모두 사라졌다. 식자공들이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기술 개발로 인하여 사라지는 직업이 식자공 뿐이겠는가.

화상이 점점 선명하여 지면서 일반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에 그 자리를 물려 주었고 이제 더 이상 필름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필름을 사용하는 전통 카메라는 후진국으로 시장을 옮겨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전화 교환원도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머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버스 한 대에 운전기사, 조수, 여차장 3인 1조가 되어서 버스 옆 구리를 탁탁 치던 차장의 목소리는 이젠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경제적 안정을 보장 받지 못한다. 경제적 안정을 원하면 새로운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변화를 하여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돈을 벌어 준다고 변화하지 않으면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한다. 있는 돈 까먹으면서 편안하게 살겠다는 생각은 가장 확실하게 망하는 지름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만이 당신의 안정을 보장한다.

사라진 식자공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그들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라진 식자공을 기억하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