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금거래 중단 속사정은?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4.04.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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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융가문의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 은행이 상품시장의 수익성이 미미하다며 금, 석유를 비롯한 모든 상품 거래를 완전히 중단한다고 14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스차일드의 금 시장 철수 결정은 로스차일드 은행의 새 회장인 데이빗 드 로스차일드 남작이 상품 거래 수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며 상품 시장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200년전 웰링턴 공작의 군대가 프랑스로 진격할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을 영국해협을 통해 밀수하면서부터 금을 다루기 시작했으며 1919년 금시장 개설 이래 지속적으로 참여해왔었다.

로스차일드 은행은 지난해 상품거래에서 단지 460만파운드 만을 벌어들였다. 이는 은행의 총영업이익의 2.2%에 해당하는 적은 금액이다. 이는 5년전의 1420만파운드, 8.6%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태인 금융업자 집안으로 유럽의 은행가문 중 가장 유명하다. 지난 200여년 동안 유럽의 경제 및 정치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대금업자로 출발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4~1812)는 빈 런던 나폴리 파리 등에 지점을 두고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했고 그의 다섯 아들에게 각 지점을 맡겼다.

다섯 아들들은 각각 그 나라 정부와 유착, 귀족의 칭호를 받았고 오늘날 국제 금융 자본의 기틀을 마련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설립한 은행은 뱅크 오브 노비아 스코티아, 도이치방크, HSBC 등이다.

특히 다섯째 아들인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79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5년만에 영국의 재정을 주도하는 자본가로 성장했다. 네이선은 200년전 웰링턴 공작의 군대가 프랑스로 진격할때 막대한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전쟁 자금을 조달했다.


로스차일드가가 금을 다룬 것은 이 전쟁자금을 대기 위해 금을 밀수하면서부터였다. 웰링턴 공작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장군으로 영국 수상을 역임했으며,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

네이선은 금을 밀수한 자본으로 영국 정부 국채를 무한정 사들여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 게다가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을 격파함에 따라 영국 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로스차일드가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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